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제목이 끌려서 챙겨보게 된 책이었는데 이렇게나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책은 처음이었다. 내 취향과 책이 삐그덕삐그덕댔지만 끝까지 읽겠다는 오기-_-;로 읽었다.;
끝까지 읽고 난 지금 "다 읽었다아!!!"라는 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마음에 남질 않는다. 그건 아마도 여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37살이고, 덴마크에 있지만 그린란드로 돌아가고 싶은 이누이트 아가씨. 덴마크와 대조되는 그린란드. 나는 덴마크 쪽의 인간이었기에 이 책이 너무나 불편했다.;
나는 모리츠가 너무 안타까웠다. 사랑이 죽으면 세상의 색이 빛을 잃는다. 대부분의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믿지만 그 과거는 잊혀질 뿐 사라지진 않는다. 스밀라는 모리츠의 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손을 내밀지는 않는다. 단 한번이라도 두 부녀가 껴안았다면.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면. 모리츠에겐 스밀라가 필요했지만 스밀라에게 모리츠는 그만큼의 가치가 없었다. 왜 인간관계에선 무심한 사람이 유리한 걸까.
눈을 좋아하지만 읽을 수 없고 수학도, 숫자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렇게 숫자로 설명하는 아가씨를 처음부터 좋아할 수 없었던 거야! 하지만 이렇게 보는 세상은 지금의 내가 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르겠지.
스밀라에게 의미가 있던 사람은 수리공 푀일이었다. 사랑.사랑.사랑. 다가오는 행복과 그 뒤의 상실에 대한 공포. 이 감정은 나도 이제 조금쯤은 알고 있다. 『인간 실격』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미로가 써줬던 대로 '그럼에도 믿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떠오르는 문제이고, 스밀라나 나처럼 단념하는 삶을 살아왔던 사람에게는 이쯤에서 등을 돌리고 싶은 법이니까. 유일하게 스밀라와 공감했던 부분.;
▶ 내용 언급
끝까지 읽고 난 지금 "다 읽었다아!!!"라는 느낌 외에는 아무것도 마음에 남질 않는다. 그건 아마도 여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37살이고, 덴마크에 있지만 그린란드로 돌아가고 싶은 이누이트 아가씨. 덴마크와 대조되는 그린란드. 나는 덴마크 쪽의 인간이었기에 이 책이 너무나 불편했다.;
"넌 네 엄마를 꼭 닮았구나"
모리츠는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는 그의 영혼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사라질 때 모리츠의 한 부분을 함께 가지고 가버렸던 것이다. 아니 더욱 심각했다. 그의 물리적 세계의 일부분이 같이 물속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거기, 주차장에서, 그 겨울 이른 아침에, 우리가 서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을 때 그의 피가 뚝뚝 떨어져 작은 붉은 터널처럼 타오르며 눈 속으로 파고드는 동안, 나는 그에 대한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어머니가 죽기 전, 그가 그린란드에 있던 때의 기억이었다. 그의 내부에 숨어 있던 기분이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그네를 타던 한가운데에서도 인생의 환희를 표현하는 명랑함이 있었고, 심지어 일종의 따뜻함까지도 있었던 것을 기억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세계에서 그 부분을 함께 가지고 가버렸다. 어머니는 모든 색깔을 가지고 사라졌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단지 흑백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갇혀있게 되었다.
모리츠가 나를 덴마크로 데리고 온 것은 내가 그의 상실된 부분을 상기시켜주는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진도 숭배한다. 스카프 앞에 무릎을 꿇기도 한다. 그들은 건물 벽을 바라보는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뭐든지 그들을 덥혀주고 태워버리는 연료에 불을 붙일 수 있다.
모리츠의 경우는 더욱 심각했다. 그는 분자까지도 광활한 공허 속에 빠져버린 사람과 절망적인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의 사랑은 희망을 포기해버렸다. 하지만 그 희망은 그의 기억 속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바로 그 기억이었다. 그는 온갖 어려움을 다 겪고 나를 여기로 데려왔으며, 내 어머니였던 여자와 내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질을 관찰함으로써 영원한 유예를 찾기 위해 수년간 적대감의 사막 속에서 끝없는 거절을 참아왔던 것이다.
(도시, 152쪽)
우리 앞에 서 있는 모리츠의 한 몸에는 세 사람이 들어있었다.
그는 나의 아버지였다 나의 어머니를 아직도 사랑하고 어쩌면 나도 그만큼 사랑할지 모르는 사람. 그리고 이제는 주체할 수 없는 걱정으로 병까지 날 지경이 된 사람.
그는 위대한 의사이자, 의학 박사고, 국제적으로 저명한 주사 전문가였다. 한번도 따돌림당해본 적이 없으며 언제나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서 상황을 알게 되는 사람.
그리고 그는 작은 소년이었다. 어떻게든 껴보고 싶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방의 닫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
(도시 321-2쪽)
"수학의 기초가 뭔지 알아요?" 나는 물었다. "수학의 기초는 숫자예요. 누군가 내게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숫자라고 말할 거예요. 눈과 얼음과 숫자. 왜인지 알아요?"
수리공은 호두까기 도구로 집게발을 깨서는 구부러진 집게로 살을 빼냈다.
"숫자 체계는 인간의 삶과 같기 때문이에요. 먼저 자연수부터 시작해요. 홀수 중에서 양의 정수들이요. 작은 아이들의 숫자죠. 하지만 인간 의식은 확장해요. 어린이는 갈망의 감각을 발견하죠. 그럼 갈망에 대한 수학적 표현이 뭔지 아세요?"
수리공은 수프에다가 크림을 얹고 오렌지 주스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음수예요. 뭔가 잃어버리고 있다는 감정의 공식화. 인간 의식은 더욱더 확장하고 아이들은 그 사이의 공간을 발견하죠. 돌 사이, 돌 위의 이끼 사이, 사람들 사이, 그리고 숫자 사이. 정수에 분수를 더하면 유리수가 돼요. 인간 의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죠. 이성을 넘어서고 싶어하죠. 인간 의식은 제곱근을 풀어내는 것 같은 기묘한 연산을 더 하게 돼요. 그럼 무리수가 되는 거예요."
수리공은 프렌치 식빵를 오븐에 데우고 후추 빻는 기구를 채웠다.
"무리수는 광기의 형태예요. 무리수는 무한하기 때문이죠. 무리수를 다 적을 수는 없어요. 한계를 넘어선 지점까지 인간 의식을 밀어붙이죠. 유리수와 무리수를 더하면 실수가 되는 거예요."
나는 좀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방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동족 인간에게 나 자신을 설명할 기회를 갖는다는 건 드문 일이다. 보통 우리는 발언권을 얻기 위해서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이건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아요. 절대 멈추지 않죠. 왜냐하면 지금도, 바로 즉석에서 우리는 실수에 음수의 상상의 제곱근을 더해 확장하니까요. 이 허수는 우리가 그려볼 수도 없는 수, 보통 인간 의식이 이해할 수 없는 수예요. 그래서 이런 허수를 실수에 더할 때, 복소수 체계를 갖게 되는 거죠. 얼음이 결정을 형상화하는 과정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첫번째 숫자 체계예요. 이 체계는 광활하고 열린 풍경과 같아요. 지평선이죠. 우리는 그쪽을 향해 가지만 지평선은 끊임없이 물러서요. 거기가 그린란드예요. 내가 그 없이는 살수 없는 거죠! 그래서 나는 갇히고 싶지 않은 거예요."
(도시, 158-9쪽)
눈을 좋아하지만 읽을 수 없고 수학도, 숫자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이렇게 숫자로 설명하는 아가씨를 처음부터 좋아할 수 없었던 거야! 하지만 이렇게 보는 세상은 지금의 내가 보는 세상과는 전혀 다르겠지.
거기 침대 속에서 행복이 내게로 다가왔다. 내게 속한 것이 아니고, 그 방과 세상을 굴러다니는 불의 전차처럼.
잠시 동안 나는 그게 굴러가도록 내버려둔 채, 거기 누워서 내가 가진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더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다음 순간에도 나는 그대로 계속 매달려 있고 싶었다. 행복이 계속 되기를 원했다. 그는 내일도 내 옆에 누워 있어야만 한다.이것이 나의 기회다. 하나뿐인, 마지막 기회.
나는 바닥에 대고 다리를 흔들었다. 이제 공포가 찾아들었다.
이것은 내가 37년 동안 피하려고 노력해왔던 것이다. 나는 구조적으로 세상에서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일을 연습해왔다. 단념하는 법을. 어떤 것에 대한 희망도 버렸다.
스밀라에게 의미가 있던 사람은 수리공 푀일이었다. 사랑.사랑.사랑. 다가오는 행복과 그 뒤의 상실에 대한 공포. 이 감정은 나도 이제 조금쯤은 알고 있다. 『인간 실격』을 읽었을 때도 느꼈지만 미로가 써줬던 대로 '그럼에도 믿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는 언제나 떠오르는 문제이고, 스밀라나 나처럼 단념하는 삶을 살아왔던 사람에게는 이쯤에서 등을 돌리고 싶은 법이니까. 유일하게 스밀라와 공감했던 부분.;
▶ 마음에 들었던 부분
이제 사람들은 이사야를 땅속으로 내리고 있다. 짙은 색 나무로 만든 관은 너무나 작았고, 이미 그 위에 눈이 한 켜 깔려 있었다. 눈송이는 작은 깃털만 하다. 눈은 그런 식으로 존재하고, 반드시 차갑지만은 않다. 이 순간, 하늘은 이사야를 위해 울고 있으며, 눈물은 서리로 바뀌어 그 애를 덮어주고 있다. 이런 식으로 우주는 이사야의 몸 위에 담요를 덮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 애가 다시는 춥지 않도록.
(도시, 14-15쪽)
널리 알려진 생각으로는 아이들의 마음은 열려 있고, 진정한 내적 자아는 밖으로 저절로 스며나온다고 한다. 그런 말은 죄다 틀렸다. 아이보다 더 비밀스러운 사람은없으며, 아이보다 더 절실하게 비밀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도 없다.
(도시, 74쪽)
그 이름은 순전히 소리일 뿐이다. 소리 너머까지 본다면, 그 소리가 돌고 있는, 액체처럼 움직이고 있는 육체를 발견하게 된다. 그 육체가 갖고 있는 얼음에의 사랑, 분노, 갈망, 공간에 대한 지식, 약점 불성실, 충성심도. 이 모든 감정 뒤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힘이 일어났다가 스러져가며 기억의 영상들, 이름없는 소리들은 나누어져 단절된다. 그리고 기하.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는 기하의 개념이 있다.
(바다, 403쪽)
이 순간, 세탁 건조기 앞에서 나는 그 설명할 수 없는 내 청춘의 기억, 다시는 그 달콤함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기억에 매달려 있었다. 죽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바다, 415쪽)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지은이 페터 회
옮긴이 박현주
펴낸곳 마음산책
ISBN 89-89351-73-1 03890
1판 1쇄 발행 2005년 8월 10일
1판 2쇄 발행 2005년 8월 25일
지은이 페터 회
옮긴이 박현주
펴낸곳 마음산책
ISBN 89-89351-73-1 03890
1판 1쇄 발행 2005년 8월 10일
1판 2쇄 발행 2005년 8월 25일
2005/10/27 23:30
2005/10/27 23:30
프리니
접하다/책갈피를 살짝
2005/10/2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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